찬바람이 제법 부는 가을의 어느날, 에코팜므의 자원활동가 미나를 만나 인터뷰를 들었습니다. 미나는 불어 통역 자원봉사였는데요, 동그란 눈에 조근조근한 말투의 그녀가 들려주는 자원활동의 진솔한 뒷이야기, 같이 귀 기울여 보실래요?
 

콩고 가정과의 만남

올해 2~3월쯤, 페이스북에 한 친구가 콩고여성이 병원에 다니는데 의사소통이 안되니 통역 자원봉사 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 글을 보고 에코팜므에 메일을 보내게 되었고, 그렇게 통역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도와준 가정은 콩고의 난민 가정이었는데요, 7살짜리 여자아이가 간질증세가 있는 것 같아 같이 병원에 가서 상담통역을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MRI와 인지 테스트 등 여러 테스트를 받느라 일주일에 2-3번 정도 갔는데요,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알고보니 아이가 불안정한 환경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 증세가 일어난 것이었다고 하네요.

아이의 가정은 약 8년전부터 한국에 와 있었는데요, 다행히 난민 인정을 받아 아빠는 공장에서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이를 임신 했을 때부터 부모가 불안한 상태라 아마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심약하게 태어났을 것이라고 합니다. 올해 갑자기 소변도 잘 못 가리고, 발작 등을 하는 간질 증세도 나타났는데요, 이 원인이 스트레스 인 것을 알고 나서부터 한 달에 한번 약물치료만 받고 심리치료를 병행하여 지금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괜찮아졌다고 합니다.

 

즐거웠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

통역 자원봉사를 하는 6개월 동안 있었던 에피소드들도 나누었는데요, 한번은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콩고의 생선요리와 닭고기 요리 등을 대접받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음식들도 너무 맛있었고, 콩고의 문화도 엿볼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녀는 통역이 쉼 없이 말하는 일이다 보니 한번은 후두염에 심하게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하필이면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목이 너무 아파서 갈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본인이 안 가면 아이가 약도 못 타고 상담도 못 받게 되니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갔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동안 아파서 집에서 두문불출했다고 하네요.


자원활동이 그녀에게 가져다 준 변화, 그리고 그녀가 가져올 변화

   그녀는 올해 9월 아이가 병원에 안가도 될 정도로 나음에 따라 자원활동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는 순수하게 봉사를 하려는 목적보다는 불어를 사용하고 싶어서, 또 그 당시 심적으로 괴로운 일이 있었는데, 봉사를 하면서 그런 걱정들을 덜어버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다 보니 가기 싫을 때도 있었고 그만두고 싶은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막상 콩고 가정과 만나면 즐겁고, 또 자신이 그만두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임무를 이어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콩고 가정이 그 사람과 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하니 그 가정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끝까지 책임을 다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자원봉사를 마치고 나니 본인에게도 좋은 추억이 생겼고, 새로운 문화도 접하고 인연도 만들어 나갈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네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필요한 가정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는 것. 적절히 필요한 시기에 자신이 이 가정 앞에 나타나서 도와줄 수 있었고, 한국에서 말도 안 통하고 이질감을 느꼈을 텐데 자신이 친구가 되어줬다는 것, 이것이 참 보람 있었다고 하네요. 사실 보수도 받지 않고 한 달에 한번씩 먼 곳까지 가서 정기적으로 봉사를 하기란 쉽지 않지요, 하지만 끝까지 책임을 가지고 일을 완수하셨다는 것에 대해, 또 그들에게 따뜻한 정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네요, 짝짝~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원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가 난민 가정에 아직 제도적으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사실 부모님은 난민 지위를 얻었지만 아이들은 아직 무국적입니다.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났는데 우리나라는 혈통을 중요시해서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국적을 주지 않는 다네요, 콩고 국적을 얻으려고 해도 콩고 대사관에 방문하는 것도 불가능하구요. 지금이야 어려서 괜찮지만 나중에 교육이나 병원 치료, 해외 방문 등이 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본인도 이후에 경력을 더 쌓으면 이런 제도들을 개선하는데 필요한 전문 통번역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한 가정을 돕고, 나아가 이들이 한국에서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본인의 재능을 쓰고 싶어하는 그녀의 꿈, 참 멋지지 않나요?

 

통역 자원활동을 통해 소중한 재능을 기부해준 그녀, 하지만 본인도 이 활동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하는 겸손한 그녀입니다. 그녀의 자원활동은 끝이 났지만 에코팜므와의 인연은 끝난 것이 아니죠! 앞으로도 에코팜므와, 또 콩고 가정과 소중한 인연 계속해 나가길, 또 그녀의 재능이 진정 필요한 곳에 쓰여질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Posted by 에코팜므 에코팜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