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나 쉬운 난민이야기> 강의의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이에 4주간의 강의를 모두 듣는 김예영님의 후기를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



***** 김예영님의 1강 후기 먼저 읽기: ecofemme.or.kr/604 



10.18 제 2강 예멘 & 시리아 이야기 –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 유학생)


에코팜므가 주관하는 두 번째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에서는 시리아의 난민들을 후원하는 시민단체인헬프시리아(Help Syria)” 대표 압둘 와합 씨와 함께했다. “시리아 난민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멘 난민 이슈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의에서는 내전으로 인한 예멘과 시리아 난민들의 상황과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 날 강의도 충무로역 근처 한 빌딩 지하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저번 강의와 다른 점은 책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저번 1강은 우리나라의 난민들에 대한 상황을 육하원칙으로 간결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강의였다면, 이번 2강은 예멘과 시리아라는 나라의 상황 속에 깊숙이 들어가보는 강의였다. 그러므로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할 계기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하며 참석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단순히 수치화 된 데이터들과 상황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문장들로 배운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아랍의 봄으로 정권을 교체에 성공한 예멘, 새로운 화약고가 되다. 


아직까지 중동의 국가들이라 하면 모두가 이슬람교를 믿고 같은 문화를 향유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인접하여 자리한 대한민국, 일본, 중국이 판이하게 다른 것처럼 중동 국가들도 각기 다른 역사, 문화를 일궈왔다. 예멘은 중동 지역에서 27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아랍국가이다. 예멘은 남예멘, 북예멘으로 분단된 국가였다가 1990년에 통일이 된 나라라는 점에서 한반도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1978년부터 1992년까지 북예멘의 대통령으로 집권하였다. 그는 남북 통일 후 아랍의 봄의 바람이 예멘에도 불어오게 되면서 2011년에 하야하였다. 비록 이란의 개입으로 인해 무늬만 합법적인 정권 이양이었지만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세워진 것이다. 이때 까지는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고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예멘의 경우를 이상적인 민주화의 예시로 간주했다. 하지만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주변 국가들과 정치적인 갈등을 겪게 되었다. 국제적 갈등 상황 속에서, 이란은 물러난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란과 예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인 '후티' 역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에게 반격을 가한다.


군사적, 사회적 기반이 취약했던 하디 대통령은 결국 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수니파 동맹군이 예멘의 상황에 개입하게 된다. , 한 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외침이, 수니-시아파 간의 중동 대리전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파간의 갈등은 명목상의 이유일 뿐이었고, 사실상 이슬람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알력싸움이었다.


유니세프 통계에 의하면 전쟁으로 인해 예멘에서 발생한 난민의 수는 약 30만명이다. 국민의 80%가 고향을 잃었으며, 국민들 중 98%가 집을 떠나야 했다. 예멘은 나라가 넓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므로 이동과 생활이 힘든 곳이다. 공습으로 인해 도로 시스템과 기반시설이 파괴되면서 예멘인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발이 묶인 많은 사람들은 근처 산으로 피신해 하염없이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린다. 예멘 난민의 상황은 국제기구의 활동만으로는 개선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올해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제주 예멘 난민 이슈


제주도에 도착한 484명의 예멘의 망명 신청자들이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없다. 신청자 중 대부분은 1년 동안만 한국에 머물고 체류할 수 있는인도적 체류자의 지위를 받았을 뿐이다. 즉 이들의 난민 인정률은 0%인 것이다.

예멘은 예멘보다 상황이 더 힘든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국경을 넘을 바에 예멘에 남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거의 모든 나라들이 예멘 국민을 받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에 예멘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쉽지 않다. 말레이사아와 소말, 수단 이외에는 예멘에서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많은 예멘 사람들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며, 비행기를 타고 예멘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난민들은 비교적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와합 강사님이 만나셨던 제주도 예멘 분들 몇몇 분은 현지에서 부유하게 살다 내전으로 인해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대하는 시선은 '추방vs환대'로 엄청나게 양극화되어 있다.




 

시리아그 찬란했던 과거와 참혹한 현재


시리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지나고 있는, 최초의 문명이 발흥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들이 있다. (한 기사에 의하면 2010년에만 해도 시리아 국내총생산 중 14%가 관광업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시리아는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의 나라다. 도시화율이 상당히 높은 시리아는 아랍 국가 중 교육열이 제일 높으며, 교육 제도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고 한다.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않으며, 복장의 자유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생활을 한다. 와합 강사님이 파워포인트 화면으로 시리아의 아름다운 바다의 절경과 도시를 보여줬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고, 몇 백년 간의 역사와 도시적 요소가 잘 어우러진 아주 멋스러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동국가라 하면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막을 상상하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와합 강사님은 한번 친구를 놀리려 집마다 낙타가 한 마리씩 있고 주요 교통수단으로 타고 다닌다고 말했는데 그 친구가 정말 믿었다고 한다!).


시리아는 원래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갈등 없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였다. 무슬림이 대다수이지만 기독교 인구도 10%나 되는 나라로, 다른 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다. 여러 민족과 종교가 모자이크처럼 함께 공존하며 아름다운 시리아를 만들었다고 해 시리아는모자이크의 나라라고 불린기도 한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에 가면 골목마다 쟈스민 나무가 많아 그 향기로 인해 다마스쿠스를쟈스민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시리아 혁명 이후 이러한 평화로운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된다. 2011년 이후 종교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현재 2300만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난민이다.


 

혁명에서 전쟁으로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독재정치를 펼치고 있다. 시리아는 정부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에 정치 활동가 및 외국인 전문가들은 시리아에서만큼은 절대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거나 저항하면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 3 15, 한 예상치 못한 일을 계기로 시민혁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벽에 이집트 시위자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를 낙서했는데 군인들은 이들을 감금하여 고문하였다. 학생들의 부모들은 자식을 찾기 위해 경찰서에 갔으나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라”, “아이를 원하면 새로운 아이를 낳아라는 식의 무책임한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중은 분노하였고, 40년이 넘도록 세습하며 시리아를 통치해온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의 납치 이후 2-3주 간의 인고의 노력 끝에 이들의 부모, 정치가 및 활동가들은 대통령과 마침내 조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사드 대통령은 고작 아이들 몇 명 때문에 그렇게 소란을 피우냐고 하며 아이들의 상황을 신경 쓰겠다는 말을 형식적으로나마 하지 않다. 경찰은 자신의 이종사촌이고, 자신은 이모를 감당하지 못하니까 경찰들과 알아서 상황을 해결하라며 이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대통령의 이모가 화날 까봐 우리 아들이 죽어도 된다는 것인가?” 이 사건은 생방송으로 중개되어 온 국민이 볼 수 있었는데, 이 나라의 대통령에겐 희망이 없음을 모두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첫 시위는 대통령의 축출이 아닌 부패 척결을 외쳤으나, 이 사건 이후에는 민주주의와 평화,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시위가 되었다. 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시민들과 정부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일까


아사드 대통령은 공식적인 발표를 할 때마다 “more killing”, 즉 더 많은 시민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정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시리아에서는 학살이 일상처럼 자행되고 있고, 정부는 국민의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강간 및 학살 영상을 찍고 업로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을 두렵게 하기는커녕 그들의 분노를 더 불태웠다. 국민들은 죽더라도 무조건 시위를 나가야 한다고 결단했고, 그 해 7월에는 100만명의 시리아 국민들이 각지에서 일어나 시위에 참여했다. 이렇게 시리아는 두 덩어리로 분열되어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는 다른 나라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악화되었다. 예멘에서도 그랬듯 이란은 시리아의 상황에 개입하였다.


시아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이란은 예멘에서는 시아파인 반군을 지지하지만, 시리아에서는 시아파인 정부군을 지지한다 (시리아는 수니파 90%, 시아파 10%의 나라이자만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은 시아파이다). 시아파인 현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통령으로 수니파 세력이 집권하게 되면 이란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동맹국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리아의 내전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동맹국인 타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시리아는 러시아의 동맹국이고, 이란과 유사한 이유로 러시아 또한 시리아에 무기를 무제한으로 지급하며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게 된다. 대표적 수니 세력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반대로 반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미국은 조금 더 복잡한 입장을 보인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시리아의 시위자들을 지지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을 적으로 생각하는 반정부군이 권력을 잡게 되면 반이스라엘 입장을 보일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석유보다 이스라엘의 안전이 더 중요한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아사드 정부를 반대하지만 테이블 밑에서는 아사드가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키도록 하며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 수니파 무장세력 ISIS등 테러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들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예멘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를 향한 바람이 중동의 대리전으로 변질된 것이다.


시리아의 난민들


현재 시리아는 7년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탈출하지 못한 이들은 폭격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시리아 정부와 협상해 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고, 시민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국경 밖으로 나오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어렵다. 2011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나라가 시리아인의 입국을 금지했으며 주변 국가들마저 2013년 이들에게 국경을 닫았기 때문이다. 시리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향민으로 난민캠프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시리아 난민은 700만명으로, 시리아를 탈출해도 매우 열악한 상황에 살고 있다고 한다. 와합 강사님이 보여준 사진들 중, 난민캠프에서 아이들을 보고 반가워서 카메라로 찍으려 하자, 카메라가 총 인줄 알고 두 손을 번쩍 들며 울상을 짓는 한 아이의 사진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배를 타는 등 위험천만한 방법으로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도 정말 많은데, 현재까지 시리아난민들 중 대략 6500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강의를 듣는 우리 모두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와합 강사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고도 쉽다'고 했다. 복잡하고 암울한 국제 관계를 생각하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다고 말한 것일 테다.


압둘 와합 강사님은 한국으로 유학을 와 지인들과 함께 시리아의 상황을 알리고 돕기 위해헬프시리아(Help Syria)”라는 작은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후원금을 마련하여 터키를 통해 시리아 안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후원금을 전달하고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시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의 한 무너져 내리는 집에서 사람이 나와 놀랬다고 한다. 왜 난민 캠프가 아닌 이곳에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원래 직업이 기술자였던 그 분은 자신의 직업과 가족들을 차례대로 소개한 후, "나의 인격과 가족, 역사가 모두 이곳에 있는 데 난민캠프로 한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그 많은 난민들 중 한 명의 숫자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분은삶은 지속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다시 집을 지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관심은 행동과 함께 와야 합니다눈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압둘 와합 강사님은 가슴 아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부탁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특히 시리아의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 상황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예전만큼 구호 물자와 지원이 들어오지 않는 현실이라고 한다. 따라서 교육이나 의료 지원은커녕 음식을 전달하는 것조차 힘든 곳들도 있다고 한다.


강의 내내 와합 강사님은 '난민', '전쟁', '비극', '참상'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많은 나라들의 문화와 맨 얼굴을 잘 볼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언젠가 쟈스민 향기가 날리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으며 시리아의 문화를 배우는 미래를 상상한다고 했다. 피피티를 통해 보여준 예멘과 시리아의 음식, 문화, 및 아름다운 풍경을 언젠가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꼭 방문해달라고 당부하면서 강의를 끝맺었다.


시리아 정부군은 2013년부터 자국민에게 화학무기까지 사용하기 시작했고,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7년간 지속된 내전에 따른 사망자수는 약 36만명이며 이 가운데 3분의 1인은 민간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리아를 떠난 난민의 수가 작년에 500만명을 돌파했다. 강의를 들으며,  국가들의 정치 싸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소중한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정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비인간성이 기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각 나라들이 좀 더 난민과 고통받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미국의 신학가이자 국제정치사상가인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은 있지만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리와 도덕이 개인과 집단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나는 개개인이 양심과 도덕으로 집단에 저항할 때 변화와 균열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적 도덕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개인들 간의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망명을 신청한 이들을 한 추상적인 집단으로 보지 않고 이들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더욱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Posted by 에코팜므 에코팜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