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에게도 모금활동을 해주었던 법보신문에 줌머족 이야기가 실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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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양촌리에는 작은 난민공동체가 하나 있다. 머나먼 방글라데시 땅에서 정치·사회적 핍박으로부터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또 자유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이들이다. ‘재한줌머인연대’, 한국으로 망명한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줌머인들의 모임이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남동부의 치타공 산악지대를 주거지로 한 11개 소수민족을 통칭한다.

한국말로 해석하면 ‘화전생활을 하는 사람들’. 흥미로운 것은 ‘줌머’라는 단어 자체도 치타공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이 그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정치적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는 것. 재한줌머인연대 자문위원장 로넬 차크마씨는 “‘줌머’는 30~40년 전만해도 벵갈족들이 소수민족을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치타공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간 결속력을 다져주고 우리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는 울타리”라고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전체 인구의 대부분은 벵갈인이다. 줌머인은 전체 1%도 채 되지 않는 극소수민족. 치타공 산악지대라는 특수한 지역에 모여 사는데다 인종, 종교, 문화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치적 핍박을 받고 있다. 이슬람 국가이자 벵갈인이 대부분인 방글라데시에서 불교를 믿고 불교적 생활방식을 따르고 있는 소수민족 줌머인들은 종교·인종 탄압의 대상이기도 하다.


협정 뒤에도 인권유린하는 방글라데시

 과거 줌머인들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방글라데시와 힘을 합했다. 이 과정에서 방글라데시로부터 자치권 보장을 약속받았지만, 1971년 독립 후 그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글라데시 정부는 줌머인들의 터전인 치타공 산악지대에 군대를 주둔하고 벵갈인들을 이주시켜 터전을 빼앗는 등 사실상 탄압정치를 이어갔다.

1977~1979년 사이 치타공 산악지대로 이주해 온 40만명의 벵갈인과 10만명의 군인들은 줌머인에 대해 방화, 학살, 폭행, 약탈 등을 무차별 자행했다.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고 줌머인들은 대대로 살던 토지를 빼앗기고 난민이 되거나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다. 무차별 학살사건으로 인한 망명도 잇따랐다.
급기야 각종 불법적인 행위와 탄압에 저항한 투쟁이 시작됐다. 벵갈인과 줌머인 간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됐고 군대가 개입하면서 상황은 극으로 치달았다. 결국 1997년 방글라데시 정부와 줌머는 ‘치타공 산악지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평화협정이 줌머인들의 자치권을 보장해주지 못했을 뿐더러, 제대로 지켜지지 조차 않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치타공 산악지대에서는 다양한 인권침해, 학살, 폭행 사건들이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다. 재한줌머인연대 구성원 중에는 방글라데시 내 줌머인 자치권과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국내외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다 목숨을 위협받아 망명한 이들도 다수다.

“눈을 감으면 고향에서 평화롭게 친구들과 뛰놀던 때가 생각나요. 집 뒤편의 산에 올라가 강을 따라 달리고 나무 밑에 누워 잠자곤 했지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다시 평화가 찾아올까요. 고향을 떠나온 우리는 물론이고, 고향에 있는 사람들도 예전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파요.”(재한줌머인연대 홍보부장 마르마씨)

재한줌머인연대 구성원은 대부분 1997년 평화협정 이후 망명한 이들이다. 이전에 한국에 거주하던 7~8명의 줌머인들은 1997년 평화협정 체결 후 부푼 기대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갔고, 평화협약이 제구실을 못하면서 다시 망명한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줌머인 10여명이 모여 재한줌머인연대를 출범시킨 것이 2002년,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일이다. 10명 남짓했던 구성원은 10년새 74명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47명이 난민지위를 인정받았고 다른 이들도 난민 지위를 신청한 상태다. 가정을 꾸린 이들도 19쌍이나 된다. 어린 아기부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이까지 아이들도 9명이다.


자치 위해 줌머 전통문화 알리기 앞장

고국 사랑이 지극한 줌머인들은 한국에 있어도, 마음만은 치타공 산악지대를 떠나지 못한다. 때문에 재한줌머인연대는 창립 후인 2003년부터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 실태를 한국과 국제사회에 알리고, 줌머인들의 자치권을 보장받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서 학살, 폭행, 약탈 현장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것은 물론 홍보, 교육 활동부터 한국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를 통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도아시아 인권센터가 발간한 치타공 산악지대 인권보고서를 번역발간하고, 한국시민사회를 대상으로 관련 세미나를 지속 개최하며 고국의 상황을 알리는데 매진하고 있다. 매년 4월이면 불교전통행사인 보이사비 축제를 열어 한국사회에 줌머문화를 알리는데도 앞장서기도 한다.
로넬씨는 “한국사회의 크고 작은 관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큰 원동력이 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올해 10주년을 맞은 줌머인연대는 줌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고자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3월경 10주년을 기념하는 소식지 발간을 시작으로, 5월 UN 선주민정기포럼에 참가해 치타공 산악지대의 인권실태와 세계 난민들의 상황을 알릴 계획이다. 또 7~8월 경에는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줌머족장을 초청해 국제사회와 인권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줌머인들에게 민족의 상징인 족장의 방문은 더없이 뜻 깊은 일이라는 점에서 성사된다면 재한줌머인연대 활동에 큰 격려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치타공 산악지대 인권에 대한 조사도 지속, 10월 인권보고서 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힘겨운 망명생활에도 고국을 위한 끊임없는 활동을 전개하는 이유에 대해, 줌머인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고향을 다시 되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줌머 난민들의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숨쉬고 있는 치타공 산악지대에 대한 행복한 기억들이, 언젠가는 추억이 아닌 현실이 되길 발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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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beopbo.com/news/view.html?section=93&category=97&no=69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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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방글라데시 난민 줌머족에 희망을
Human Asia 김포 양촌면에 30일 'Jum 도서관' 개관
 
[시민일보] Human Asia(사단법인 아시아인권센터, 대표 서창록)가 오는 30일 오후 3시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에 위치한 재한줌머인연대(JPNK) 회관에서 'Jum 도서관' 개관식을 갖는다.

(중략)
 
이에 대해 Choto Chakma 재한줌머인연대 사무국장은 "한창 독서를 통해 꿈을 키울 나이에 경제적 여건상 그럴 수 없었던 줌머족 아동들에게 더 없이 좋은 선물이 생겼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한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동남부 치타공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인구 65만 명의 소수 민족으로 방글라데시 전체인구의 고작 0.7%에 불과하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된 이후 파키스탄 관할 지역으로 편입된 줌머인들은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하는 과정에서 현재 방글라데시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벵갈리 인들과 함께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을 벌이며 투쟁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 정부가 수립지만 방글라데시 정부는 독립 후 줌머인들의 자치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 들을 대상으로 토지 약탈 및 성폭행, 폭력, 살해 등 인권 유린을 자행해 옴에 따라 줌머인들은 인권 유린을 피해서 난민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김포시 양촌면 일대에 약 60여명의 줌머인들이 재한줌머인연대 회관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으며 이중 47명이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재한줌머인연대 사무국은 치타공 산악 지대 및 줌머인들의 인권 상황을 알리고 평화와 인권보장을 위한 연대를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이들은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몽골, 버마 등의 여타 국의 소수민족들과도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하며 지역내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의 인권 상황을 대변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원문 출처]http://siminilbo.co.kr/main/list.html?bmain=view&num=279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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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첫번째 자원 활동가 모임을 1월 27일 목요일에 하였습니다. 
힘차게 V를 그려주시는 네모가 눈에 띄네요.
장소는 저희가 입주해 있는 함께일하는 재단의 소셜번체 인큐베이팅 센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
 이 날 모임에서 저희에게 많은 웃음과 분노(?)를

아이폰의 푸딩인식을 하고 계신 "빈"입니다.
손예진과 윤두준을 비롯하여 어플의 정확성을 긍정하고 싶은 쪽과 
인순이 (ㅠ_ㅠ)와 강호동을 (ㅠ_ㅠ2) 비롯한 어플 회사를 고소하자는 쪽의
의견이 분분 하였는데요.
그 정확성을 위한 실험에 봄볕이 고생해주셨죠. 과연 봄볕은 누가 나왔을까요? ^^;

(그리고 빈의 새로한 머리가 돋보이는 그림이 눈에 띄네요. +_+;)
 그렇게 한번의 폭풍(?)은 지나가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자원 활동가들과 새로운 인턴들

그리고 활동이 끝난 분들의 소감까지 이어져 긴 시간 동안 이야기가 진행 되었습니다.
네모를 소개해주고 계신 반디의 모습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소개가 끝나고 활동 소감을 각자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매장 자원활동을 해주시는 감입니다.

한달 동안 활동했던 활동들에 대한 의견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집중해서 경청하고 계신 뮈뮈의 모습도 보이네요.

 이 날 이야기가 길어지는 바람에 활동이야기를 못하고 가신 반디.

다음에는 꼭 활동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나비가 진행을 해주시고 계시네요.

스탭과 인턴의 활동이 끝나는 봄볕과 빈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애정도 한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생각에 잠긴 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요 ~ ^.^?

김포 줌머족의 한국어 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는 네모입니다.

한국어 선생님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긴급구호까지 하게 된 이야기들도 들려주셨습니다.
사진의 컨셉은 "뭐 이정도쯤이야" 가 되겠네요.
모임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는 즐겁고 유쾌한 자리였습니다.

또한 한달동안 활동하며 느낀점과 앞으로 에코팜므가 나아갈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습니다.

 또한 저로서는 자원활동가들에게는 직원보다는 책임감이 부족하거나
주인의식이 약할거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원활동가분들의 이주여성들과 에코팜므에 대한 열정과 생각은
제목처럼 이보다 더 뜨거울수는 없었습니다.

함께 고민하며 나아가는 한명의 천걸음보다는 천명의 한걸음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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