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팜므의 자원활동가 두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항상 밝고 유쾌한 그녀, 쏭입니다. 쏭은 대학교 때 불어를 전공하고 지금은 한국어공부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에코팜므와 오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눠 보았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긴 관계로 2편으로 나눴습니다)


Q.  
어떤 계기로 에코팜므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불어를 공부했고, 학부 전공도 불문학인지라, 자원활동을 하게 된다면 불어와 관련해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지인을 통해서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을 지원하는 에코팜므에 대해서 알게 되어 나비에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직후에 짧게나마 세네갈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열악한 환경은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세네갈은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서는 그래도 경제,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있는 편이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민주화도 더딘 것 같았고, 민족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느라 국민들의 단합을 강하게 호소하는 것 같았어요. (세네갈의 표어는 Un Peuple, Un But, Une Foi -하나의 국민, 하나의 목표, 하나의 신념-이랍니다. 처음에 그 표어를 듣고 조금 무서워서 소름 돋았던 것 같아요. 관점에 따라서는 그런 국가의 가치관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논리로 사용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네갈에서 제가 본 것보다 아마 더 열악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용기를 내서 이주를 결심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내가 도움은 못 주더라도 친구 역할이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사실 정치적 박해를 피해서 한국으로 온 아프리카 국가 출신 난민이 있다는 것도 에코팜므를 알기 전에는 몰랐으니, 정말 그때는 호기심과 의욕이 충만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한국에 돌아와서 나비에게 다시 연락하게 되었고, 자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어떤 자원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제일 처음에는 콩고난민아동 세 명에게 불어 알파벳 쓰기/읽기를 가르쳤어요. 나중에 커서, 그리고 콩고의 상황이 좋아지면, 콩고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해서 불어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에는 또 우연한 계기로 콩고이주여성인 샤를로뜨가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제가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역할을 했고요. 한국 어린이들에게 콩고여성이 모국어인 링갈라어로 동화를 읽어준다는 행위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보람 있었어요. 그 인연으로 요즘은 샤를로뜨와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제가 안산까지 가지는 못 해서, 스카이프로 일 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어요. :)

 

Q.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가지 알려주세요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욤비씨 아이들에게 불어 알파벳을 가르치던 중이었어요. 글자만 배우면 심심하니까 그림도 같이 그려보는 활동을 했는데, 알파벳 ‘I’를 배우면서, ‘I’로 시작하는 글자, indépendance(독립)를 쓰고,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요. 욤비씨가 정치적 억압을 받아서 한국에 왔으니까, 콩고가 민주화되는 모습이라든지 자유와 관련된 그림을 그릴 줄 알았는데,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그리더라고요. 한국에 온지 몇 년 안 되었는데, 벌써 그렇게 생각하는 방식이 변했다는 사실이 제게는 무척 충격적이었고, 인상 깊었어요.

마음이 뭉클했던 일은도 있었는데요, 욤비씨 댁이 인천이라 서울에 사는 저로서는 정말 멀어요. 게다가 저는 버스-지하철-버스를 타고 가니, 정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지치기도 했어요. 하루는 너무 지친 채 수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그날따라 유독 신이 나는 일이 있는지 산만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약간 혼을 냈어요. 그랬더니 조나단이 하는 말이 누나가 오늘 너무 지쳐 보여서, 기분 좋게 해주려고 그랬던건데미안해요…”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자원활동을 즐겁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새삼 했어요. 지금은 여건상 인천까지 갈 수 없어서, 아이들에게 가지 못하는데, 많이 미안하고 마음에 쓰여요. 가끔 서로 전화하는데, 어서 돈 벌어서 자동차를 타고 인천에 갔으면 좋겠어요!!! 차 타면 인천도 금방 가는 것 같던데요? 아닌가요? 제가 운전을 안 하고, 항상 편하게 앉아있기만 해서 운전의 고됨을 또 모르니까 하는 생각인가요? ㅎㅎ

Posted by 에코팜므 에코팜므

야당 성향의 방송국에서 일하다 정부군의 탄압을 받은 콩고민주공화국(콩고) 출신 언론인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진창수)는 난민인정 불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콩고 출신 E씨(31)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E씨는 콩고 킨샤사 출신으로 2005년 정부에 비판적인 민영 방송국 CCTV에 입사했다. 그는 시사 프로그램 보조 리포터로 조세프 카빌라 대통령의 비리를 파헤치고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다. 2006년 치러진 콩고 대선에서 카빌라가 다시 승리하자 이듬해 3월 정부군이 방송국을 공격했고, E씨는 프로그램 총책임자 및 촬영기사와 함께 무장 군인들에게 폭행당한 뒤 체포됐다. E씨는 무장 군인들로부터 가택 수색을 받고 결국 대통령궁 인근에 구금됐다. 당시 콩고에서는 정부군과 야당 측 무장 근위병들 간 충돌로 6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군인 친척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난 E씨는 콩고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집에 피신해 있다가 2007년 10월 한국에 입국했고, 열흘 후 난민인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법무부가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난민 인정을 불허하자 E씨는 소송을 냈다.
======================
[원문출처]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562347&cp=nv
Posted by 에코팜므 에코팜므

사진 너무 예쁘게 잘나왔지요?
엘라서울은 엘르에서 나온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인데요, 이번에 엘라서울에서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취재 했는데 거기에 마리도 9명의 외국인들 중 하나로 당당히 잡지에 나왔답니다~~ 
에코팜므의 작가로서 한국에서의 힘든 생활을 잘 적응해 나가고 있는 마리,
이제는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다른 외국인들에 비해서 뮈리엘은 다른 사람들의 편견이나 시선
또 경제적인 면에서도 자유롭지 못한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그럼 뮈리엘을 비롯한 다른 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모두들 많이 많이 응원해 주세요:)


 

Posted by 에코팜므 에코팜므